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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이야기

첫 출근의 풍경

탄광의 일은 노동강도가 높고, 작업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무척 힘이 든다. 첫 출근 때, 가난을 벗어나는 희망을 품지만 실제 막장에서는 그들이 상상하는 것 보다 힘든 작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이걸 견딜 수 있을까?’, ‘그만 둘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막장 작업이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제 어느 정도 힘든가는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광부들에게 있어서 첫 출근은 잊혀지지 않는 경험 중의 하나이다.

"처음에는 자신만만하게 제일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데 돌라하고 큰소리 치고 들어갔는데, 막상 막장에 가서 삽과 괭이를 들고 일을 하니까 땀이 비오듯하였습니다. 큰 소리 치고 들어갔는데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에는 도저히 근무를 할 수 없어가 조퇴하고 첫날을 나왔습니다." (23년간 탄광에서 근무한 광부)

탄광으로 출근하는 광부들

광부로 다시 태어나기

탄광에서 육체적으로 힘든 작업환경은 광부들에게 정신적으로도 힘든 고통을 주었다. 남들 다 자고 있는 야간에 땅 속에 들어가서 힘들게 일해야 한다는 그 자체가 정신적 고통이었다. 이러한 힘듬은 탄광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였는데, 그때 마다 그들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생활고를 이겨내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이었다. 탄광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육체적 힘듬과 정신적 힘듬을 극복하고 견디는 과정이다. 이렇게 극복하고 견디는 과정은 단순하게 몸과 마음을 적응하는 차원을 넘어서 참고 견디어 탄광이라는 공간에 맞는 몸과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는 의미를 가진다.

"나 같은 경우에도 그때 총각이지만은 예를 들어서 나한테 딸린 학교 다니는 동생이 없다든지, 부모님이 참말로 집안이 괜찮다든지 이러면 제가 벌써 치았지요. 그러나 인제 환경도 어렵고 동생 학비도 보태야 되고, 내 아니면 안되겠다는 그런 신념이 있기 때문에 견디고 나간거지. 안 그러면 벌써 치았어." (13년간 탄광에서 근무한 광부)

갱안에서 작업하는 광부

월남막장 이야기

광부들이 작업하는 곳을 막장이라고 한다. 막장의 기온은 대개 30℃를 웃돈다. 또한 지하 갱도는 물이 나오기 때문에 습도가 아주 높다. 이러한 막장에서 일을 하면 온몸은 금방 땀으로 뒤범벅된다. 2~3회 이상 옷에 스며든 땀을 짜서 입어야 한다. 또한 석탄가루를 막아주는 방진마스크는 숨이 차서 착용조차 못할 경우가 많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금방 콧구멍은 막히고 입속은 까맣게 된다. 광부들은 이렇게 무더운 막장 중에서 가장 덥고 습한 막장을 월남막장이라고 불렀다. 월남처럼 더워서 붙인 이름인 듯하다.

"예를 들어서 목도리 수건을 가지고 갑니다. 수건을 배안에다가. 넣어가지고 한 차 싣고 나면 짜면 막 물 그냥 물 묻혀 짜듯이 쭉 나옵니다. 그렇고 그 다음에 또 쉴 동안에 도랑물 같은데 있으면 찬거 시원하게 해가 또 배에 넣고. 이런식으로 인제 지열을 했죠." (13년간 탄광에서 근무한 광부)

갱안에서 작업하는 광부

광부와 쥐이야기

광부와 쥐는 아주 절친한 사이다. 갱내에서 쥐를 발견하면 광부들은 안심하고 작업한다. 갱내에는 탄층에서 발생하는 폭발성 가스인 메탄가스, 유독가스인 일산화탄소 등의 유해위험가스가 많다. 갱내에 쥐가 살고 있다는 것은 갱내에 유해한 가스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광부들은 갱내에서 쥐를 함부로 잡지 않고 점심 도시락을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한다. 또한 쥐는 아주 영리한 동물이기 때문에 갱내에서 발생되는 출수사고나 붕괴사고 등을 미리 예감한다. 광부들은 쥐의 움직임을 보고 사고의 위험을 미리 인지하여 피할 수 있다.

"아주 위험하죠. 그러니까 이제 공동에는 이래 쳐다보고 감각으로 그냥 예를 들어서 우리 광산 댕기는 사람들은 들어가면 이제 안전교육 보면은 점심 먹을 시간에 이래 보면은 쥐가 있다든지 그죠. 그러면 그 쥐를 보호를 하잖아요. 그러면 인제 어느 순간에 그 쥐가 막 내빼다든지 이러면은 이슬이라고 옵니다." (13년간 탄광에서 근무한 광부)

갱안에서 작업하는 광부

탄광촌의 금기

금기는 어떤 대상에 대한 접촉이나 언급이 금지되는 것이다. 탄광의 일은 다른 직종보다 노동강도가 매우 높고 작업장 환경 역시 좋지 않아 항상 크고 작은 사고에 노출되어 있다. 사고가 많이 발생하다 보니 안전에 대한 금기사항이 아주 다양하게 있다.

  • 출근할 때 여자가 가로질러 가면 출근하지 않는다.
  • 출근하기 전 여자가 방문하지 않는다.
  • 전날 밤 꿈자리가 뒤숭숭하면 출근하지 않는다.
  • 남편 출근시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 부부싸움 후에는 가급적 갱에 들어가지 않는다.
  • 도시락에 밥을 4주걱 푸지 않는다.
  • 남편이 출근한 후 신발을 방 안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 갱내에서는 휘파람을 불거나 뛰지 않는다.
  • 갱내에서는 쥐를 잡지 않는다.
  • 갱내에서 용변을 볼 때 출입금지 구역으로 가지 않는다.
  • 출근 길에 짐승을 치면 그날은 출근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출근할 때 광업소 다니는 부인 아줌마들은 고마 자전차 타고 출근길이다 이러면 7시에 아예 안나갑니다. 밖에를. 또 나가다가도 앞에 지나가면 먼저 가라 그러고. 먼저 가라그고. 금기를 많이 하죠 그런거는. 또 어떤 사람들은 가다 앞에 아줌마 확 지나가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13년간 탄광에서 근무한 광부)

탄광촌 모습

죽탄이야기

지하 갱도에는 지하수가 있어 항상 물이 흘러 다닌다. 갱도를 굴착할 때는 이 물이 흘러가는 배수로를 만들어 물이 잘 빠지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지하에 있는 물이 배수로로 빠지지 않고 석탄층으로 스며드는 경우가 있다. 석탄층에 물이 계속 스며들면 어느 순간 석탄층은 터지게 된다. 터진 석탄층은 물과 석탄이 뒤범벅이 되어 마치 죽처럼 되어 갱도로 밀려나온다. 석탄이 죽처럼 되어 있어 ‘죽탄’이라고 한다. 죽탄에 휩쓸리면 갱내에 철로된 물건들도 엿가락처럼 휘게 되기 때문에 사람이 매몰되면 상상을 뛰어넘는 끔찍한 상황이 발생된다. 이 때문에 죽탄사고는 인명구조가 어렵고, 심한 경우에는 시신도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출수사고 였는데, 그것도 병방이었어요. 병방이었는데, 갑자기 죽탄이 밀려들어가지고. 그 죽탄의 힘이 대단합니다. 그게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이런 쇠덩어리가 그냥 막 굽습니다. 그 힘에, 압력에. 그런께 공동에 갇혀 있는 수백 톤의 물이 한꺼번에 갱도에 터져나오니까 그 위력은 엄청납니다. 사람이 믹스가 되서 나왔어요. 그래서 시체를 찾는 데만도 상당히 며칠이 걸렸는데……목은 팔목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사람 머리가 크지만은 뼈가 빠져나가니까 주먹만 해져요 사람이. 그런 참 처참한 모습을 봤는데" (23년간 탄광에서 근무한 광부)

죽탄에 찌그러진 광차

여성광부 이야기

탄광에서는 남성들만 광부로 일한다고 흔히 알고 있지만, 실제 탄광에는 여성들이 광부로 일하였다. 여성 광부들은 주로 선탄작업을 많이 하였다. 선탄작업은 석탄생산과정의 마지막 단계로 석탄과 돌을 분리해내는 작업이다. 선탄장에서 일하는 여성광부들은 남편이 탄광에서 사고로 순직한 부인들이 많았다. 탄광에서 사고로 순직한 남성의 부인을 선탄부로 고용한 것이다. 선탄작업은 겨울철이 힘든데, 장갑을 끼고 있어도 얼어붙은 석탄과 돌에 손이 달라붙기 일쑤다. 이 때문에 선탄장의 여성광부들은 항상 동상으로 고생하였고, 몇 십년 동안 선탄장에서 일한 여성광부들은 관절로 인해 손마디가 굵어지게 된다.

"오월 달에 돌 지내고 음력으로 십일월 달에 남편이 순직당했으께 애기잖아요. 인제 열한살 먹고 고만고만하지 아홉 살 먹고 여섯 살 먹고, 네 살 먹고, 첫 돌 지냈으께요. 턱하게 처음에 일가는게 야간이 걸렸네요. 병반이 걸렸네요. 방은 한 칸인데 시계는 다 되가는데 열 두시가 다 되가는데 아가 안 자는 거에요. 막내가요. 그래가지고는 우는 거를 보고 일을 가요. 우는 걸 보고 일을 가면 오로지 아 우는 소리만 귀에 듣기는거라요.... 우는 걸 보고 일을 또 가만 저 언니가 인제 그거를 중학교 밖에 못했어요. 애들 키운다고 지 동생들 키운다고. 살림사니라고. 그래가 하는데. 이제 주간 때 되면 언니가 아를 업고 저거 밥 보따리하고 책가방하고 이래 이고 인자 중학교를 가요. 그럼 일하다 건너다 보면요 업고 내려가는거 보면요. 날 좋은 날은 괜찮은데 비오는 날은 가슴이 찟어져요. 가슴이 찟어져요." (24년간 선탄장에서 근무한 여성 광부)

탄광의 여성광부

은성광업소 개광 이야기

문경석탄박물관이 서 있는 이곳은 1994년까지 은성탄광이 있던 자리이다. 은성탄광은 1938년 일본광업주식회사에서 개발하였다. 탄광이 들어서기 전 이곳은 도탄이라는 조용한 농촌 마을이었다.

"300번지가 도탄라고 했어. 탄이 많다는 이야기라. 그런데 김동석이 아들 정균이라고 있어. 정균이가 나하고 동창이라. 정균이가 저 뒤안에 가서 실컷 파가지고서 불을 놓으만 그래 불이 붙드라는 거라. 참말로 도탄이라. 그기 탄인지 몰랐어. 그래 약도 다리고 그랬어" (일제강점기 은성탄광에서 근무한 광부)

"'은성'이라는 말은 이곳에 탄맥을 조사하면서 만들졌는데, 탄맥이 문경시 가은읍에서 마성면으로 뻗어 있어, 가은의 '은'을 따고 마성의 '성'을 따서 은성무연탄광이라고 불렀다. 맥이 있어 맥이. 시커먼게 줄이 이래 섰어, 그래 왜놈들이 그래 줄이 나오면 안파여. 여서 팠다그만 저가서 인제 저짜 몇 십 미터 가서 말목 박아 놨어. 그래 거 파면 또 나와요. 그게 전부다 이 산에 내가 알기로는 열군데도 더 팠어... 마성쪽도 되고 가은쪽이 더 많지. 근데 이 산이 전부 탄 덩어리다. 참 왜놈들이 용하게 알긴 알아요. 이 밑에 탄이 다 들었는걸 왜놈들이. (일제강점기 은성탄광에서 근무한 광부)

해방 이후 은성탄광은 대한석탄공사 소속 국광의 길을 걷다가 1994년 폐광되었고, 그 자리에 문경석탄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 은성탄광 직원단체, 해방이후 은성탄광 사택 앞, 은성탄광 배급장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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